진흙 Mud

.동구의 도시를 거닐던 한 이방인이 자신의 눈 앞에서 절도를 하고 줄행랑치는 한 소년을 뒤쫓는다. 이방인은 토박이 소년의 칼을 맞고 쓰러지지만 소년은 이방인을 내팽개치기가 쉽지 않다. 결국 소년은 상처난 이방인을 유모차 위에 얹고 쉴 만한 곳을 찾아 헤맨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희망의 농토를 누비지 않고, 영락한 과거가 널부러진 쓰레기 더미로 향할 뿐이며, 그 여정에 훼방꾼들이 나타난다.
'소비에트' 내음이 물씬 풍기는 필터로 훑는 동구의 모습은 혁명전야의 비장함이 아니라 해체 이후의 스산함으로 가득하다. 러시아 영화의 컨벤션이 가득하지만, 내용은 정반대로 흐른다. 소년이 짊어지고 가야하는 이방인은 한때는 동구가 기대었던, 그러나 종종 당해야 했던 쏘비에뜨이다. 오뎃사의 계단을 구르던 유모차에는 아이와 어른이 뒤바뀐다. 죽어가는 러시아가 그 속에 들어있고, 근근히 살아남은 동구가 투영된 아이는 십자가를 지듯 유모차를 끌고 힘겹게 언덕을 오른다. 몽타주는 새로운 충돌을 만들어낸다. (1998년 제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나호원)